이래저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신규 확장팩인 '격전의 아제로스(Battle for Azeroth)'가 출시일로부터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확장팩 출시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된 일곱 번째 신규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에서는 지난 8월 돌이켜봤던 것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인 아제로스를 양분하는 두 진영이 연합해 불타는 군단이라는 공통의 적과 맞섰던 것과 다르게 오리지널 이후 13주년 만에 돌아온 두 진영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이번 확장팩에 돌입하기에 앞서 인트로 퀘스트이자 격전의 아제로스 공식 트레일러의 주제이기도 한 '로데론 공성전' 이전에 새로운 대족장 실바나스 윈드러너가 이끄는 호드 군대가 13년 동안 나이트 엘프의 수도로 자리를 지킨 다르나서스가 위치한 세계수 텔드랏실을 불태우는 가시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그 보복으로 이번 확장팩 인트로에서는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시절부터 호드 소속 언데드인 포세이큰의 수도 로데론 폐허의 지하에 위치한 언더시티가 전장이 된 영향으로 폐허가 됐다.
격전의 아제로스는 본격적으로 두 진영이 격전을 벌이는 구도에 돌입하면서 이전 확장팩인 군단과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 함께한 종족들을 각각 동맹으로 받아들이며 이에 더해 협력을 구하기 위해 각기 트롤의 잔달라 제국과 인간의 나라인 쿨 티라스로 향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 가시의 전쟁에서 촉발된 이야기
불타는 군단과 그 수장인 살게라스의 위협을 극적으로 막아낸 기쁨도 잠시. 살게라스가 최후의 저항으로 꽂아넣은 실리더스의 고리발로 인해 아제로스는 큰 상처를 입고 아제로스의 힘을 담은 채 피가 결정화된 새로운 광물 아제라이트의 압도적인 가능성을 발견한 고블린들이 채굴을 시작하고, 호드의 대족장 실바나스 윈드러너의 승인이 떨어지면서 아제라이트는 13년간 합을 맞췄던 두 세력의 불안한 평화에 큰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호드의 고블린들은 아제라이트를 캐내고, 보안을 철저히 했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얼라이언스 스톰윈드 인간의 첩보기관 SI:7에서 실리더스에 나타난 아제라이트와 고블린의 동태를 이미 포착해 새로운 왕 안두인 린에게 보고했으며 이로 인해 두 진영이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군대를 움직여 최종적으로 다르나서스가 위치한 텔드랏실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얼라이언스가 이에 반격하면서 로데론을 공격하지만 실바나스는 이 과정에서 다시금 역병 무기를 사용하고, 얼라이언스의 수장들이 역병 공격을 받을 뻔 하는 등 맹렬한 싸움과 비아냥이 오갔다. 이렇게 가시의 전쟁, 로데론 공성전으로 이어진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전쟁 발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새 동맹종족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동맹을 찾아 바다를 건넌다.
호드는 긴 세월동안 대적했던 잔달라 트롤의 제국이 있는 잔달라로. 얼라이언스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가 과거 아버지를 저버리면서 단절된 고향, 쿨 티라스로 향한다.
■ 겉은 엘도라도, 속은 고름 투성이
트롤의 대제국 잔달라 트롤의 땅인 잔달라의 수도는 줄다자르에 위치한 다자알로다. 처음 잔달라 제국의 신왕 라스타칸의 딸 탈란지 공주와 고위직인 잔추리 의회의 예언자 줄을 구출해 잔달라에 당도한 아제로스의 용사들은 잔달라 해군의 압도적인 전력과 황금의 '엘도라도'를 연상케 하는 다자알로의 위용에 압도된다. 휘황찬란한 다자알로와 그 권좌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대시장, 항구에 이르는 전경은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최강의 트롤 제국이라는 잔달라의 위용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게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다자알로의 왕좌가 위치한 거대한 봉인에서 조금만 내려와 대시장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부랑자들과 앞서 동부왕국, 칼림도어를 비롯한 각지에서 아제로스의 용사들과 대립하다 전멸의 위기에 몰렸던 부족들이 소수로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경비 병력이기도 한 라스타리 경비병들은 거대한 봉인 근처에서나 보이는 수준에 대시장까지 내려가면 그 넓이에 비해 부족한 경비전력을 실감하게 된다.
신왕이라는 현 잔달라 제국의 왕 라스타칸은 권위를 잃지 않았지만 최근 20여 년 사이에 아제로스에서 벌어진 트롤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방관했다.
아제로스의 토착 세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트롤들은 한때 아제로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대규모 세력의 종족이었다. 하지만 줄아만에서 아마니 부족이, 줄파락에서 파라키 부족이 모험가들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고, 줄구룹에서는 구루바시 부족이 패퇴한 후 다시 구루바시 부족이 재집결해 대적했지만 역시 아제로스의 모험가들에 의해 패퇴하고 만다. 비단 아제로스에서 그들의 비운의 운명은 그치지 않았고, 노스렌드에 모험가들이 당도했을 때 드라카리 제국을 형성하던 드라카리 트롤 역시 리치왕의 토벌과 함께 몰락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전 대지의 위상이자 온 아제로스를 전율하게 만들었던 데스윙의 대격변으로 수몰된 줄아만의 나즈미르의 구제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보다못해 라스타칸의 조언자이기도 한 잔추리 의회의 예언자 줄이나 딸인 탈란지 공주가 그에게 다양한 조언을 건넸지만 라스타칸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그 결과 호드의 용사들이 당도한 잔달라는 겉모습은 빛나는 황금의 문명, 엘도라도를 연상케 하는 화려함을 갖추고 있지만 외견과 달리 속이 곪을대로 곪아버린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잔달라의 해군력을 빌어 얼라이언스에 대항할 도움을 찾으려다 오히려 잔달라의 고민을 먼저 해결하게 되는 것.
호드의 용사들은 잔달라 제국에서 세 개의 큰 지역을 탐험하며 각지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게 된다. 수도가 위치한 줄다자르에서는 호드를 반기지 않는 잔달라 제국 고위 의회 잔추리 의회의 일원들에게 신뢰도를 쌓고 라스타칸의 신임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때문에 줄다자르의 4분의 1 크기를 차지하고 있는 줄다자르와 그 인근에서 하는 임무가 많은 편. 또, 줄다자르는 라스타칸의 잔달라 제국 세력이 가장 많이 뻗어있기도 한 곳이라 잔달라 트롤 외의 존재들은 동물인 경우가 많다.
한편 아마니 트롤이나 파라키 트롤들이 자리를 텄던 곳, 인스턴스 던전 줄아만과 줄파락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탈아만과 탈파락에서는 해당 부족의 잔존 인원이 '적대적' 상태로 존재하고 퀘스트를 통해 또 한 번 아제로스의 용사들과 척을 진다. 확장팩의 주요 대도시에 적대적 NPC들이 양쪽으로 위치한 특이한 구성이다. 약간의 추억 상기용으로 탈아만 퀘스트에서는 줄아만의 할라니, 날로라크 등의 네임드들과의 싸움을 할 수도 있다.
수몰된 후 큰 조치 없이 늪지가 형성된 나즈미르에서는 탈란지의 원정대를 도와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불귀의 끔찍한 땅으로 들어가 그곳에 자리를 잡은 혈트롤을 토벌하기 위해 분투한다. 나즈미르는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습지대로, 진입하자마자 탈란지의 원정대가 보낸 선발대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벽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널부러진 모습을 목격하게 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나 설정들이 난무하는 장소다. 얼라이언스에 드러스트바와 파도현자 이야기가 있다면 호드는 나즈미르의 혈트롤이 그런 분위기를 담당한다.
여기서 격전의 아제로스의 첫 번째 레이드인 울디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혈트롤들은 고위의 전투직에 여성들이 서는 여성상위 부족으로, 남성 혈트롤이 전투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고위 전투 혈트롤들은 '마마'로 불리며 남성 트롤 노예들을 부린다. 피를 사용한 혈마법과 식인을 하면 강해진다는 신앙을 가지고, 고대신인 그훈을 섬기며 나즈미르의 악몽으로 군림해온 이들은 라스타칸의 잔달라를 멸망시키려는 야욕을 가지고 병력을 줄다자르로 보내고 있다. 때문에 용사들은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피를 보게 될 것이고, 토막친 동물 고기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노예 트롤들이 메달린 모습을 보게 된다.
잔달라의 또 다른 지역이자 나즈미르와는 다른 의미로 불귀의 땅으로 여겨지는 사막 지역 볼둔에서는 호드의 용사들이 거대한 봉인에서 라스타칸을 알현할 때 강력하게 반대하던 장군 자크라제트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사막 여우 같은 귀여운 수인 종족 불페라들과 협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즈미르의 주요 적대세력이 혈트롤이었던 것처럼 볼둔의 주요 적대세력은 줄다자르에서 추방된 트롤들이나 이미 죽음을 맞이한 유령들, 그리고 자크라제트와 결탁하고 자신들이 모시던 뱀 여신 세스랄리스를 배신한 수호자 코르테크가 황제를 칭하면서 이끄는 뱀 수인 종족 세스락이 큰 줄기에서의 적을 맡는다.
한편, 장군 자크라제트와 결탁한 황제 코르테크를 따르는 세스락들인 '부정한 자(the Faithless)'는 적이지만 세스락의 세 수호자 중 하나인 보리크를 따르는 '헌신한 자(the Devoted)'들은 아군으로 불페라와의 동맹에 합류한다.
전쟁 대장정에서는 쿨 티라스의 세 지역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상대진영의 땅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 전쟁 참여 상태라면 누구나 공격할 수 있고, 공격받을 수 있는 PVP 상태가 되고, 전쟁 비참여 상태라면 유유히 쿨 티라스를 관광하는 것도 가능.
해적들도 등장
■ 바다의 딸, 다시 바다의 딸
얼라이언스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가 자신의 아버지를 저버리면서 함께 등을 돌린 고향 쿨 티라스에 향하게 된다. 쿨 티라스 역시 해군력으로 유명한 곳으로, 제이나의 아버지인 댈린 프라우드무어 제독은 워크래프트3 시점에서도 제독으로서 호드와의 전쟁에 나섰다.
얼라이언스의 주 무대인 쿨 티라스는 아제로스의 해양 국가 중 하나다. 때문에 쿨 티라스의 각 지역을 돌다 보면 어렵지 않게 어부들을 볼 수 있고, 해적 세력도 많지는 않지만 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17세기를 연상시키는 복식이 눈에 띄고, 티라가드 해협의 보랄러스를 수도로 삼는 국가이며 앞서 제이나가 저버렸다는 아버지 댈린의 아내 캐서린 프라우드무어가 국가 지도자로서 존재한다.
2차 대전쟁 당시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쿨 티라스는 댈린 제독을 잃고 함대가 실종되는 등의 손해를 입었지만 격전의 아제로스 시점에서도 아제로스의 최강 해군 전력을 가진 국가로 칭해진다. 쿨 티라스 각지에 가보면 실제로 굉장히 높은 배들이 정박한 것을 구경할 수 있다.
잔달라 제국의 아군 진영 추가가 뜻밖이었던 것과는 달리 쿨 티라스는 이전부터 확장팩 출시의 시기가 오면 추가 여부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지역이다. 악마사냥꾼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난 확장팩에서 출시됐던 것을 생각하면 은근한 감개가 있다.
쿨 티라스는 티라가드 해협, 드러스트바, 스톰송 계곡의 3개 지역으로 나뉘며 각기 네 개의 귀족 가문과 영세 귀족 가문들이 통치하고 있다.
수도인 보랄러스가 존재하는 티라가드 해협에서는 애쉬베인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쿨 티라스 경제를 손에 거머쥔 애쉬베인 가문의 프리실라 애쉬베인, 그리고 쿨 티라스 반군의 봉기, 해적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인 플린 페어윈드나 탤리아 등과 만나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사건의 내막을 밝혀나가며 캐서린 프라우드무어에게 보고하기 위해 보랄러스로 향하기까지의 여정을 주된 갈래로 삼고 있다.
드러스트바는 본격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지역이다. 죽음의 드루이드 신앙을 가진 야만인 종족 드러스트가 똬리를 틀었던 땅으로, 인간이 정착하면서 드러스트와의 대립과 인간 학살 등이 벌어졌던 땅이다. 당시 드러스트 왕 고라크 툴을 처치하면서 전쟁이 끝났고, 웨이크레스트 가문이 다스리며 광산업 등이 발달한 지역이고 드러스트 외에도 마녀들이 등장한다. 지역 분위기 자체가 꽤 어두운 곳에 호드도 전쟁 대장정을 통해 마녀들을 마주하는 등 공포스러운 느낌을 잘 살린 지역. 퀘스트 내용도 심장이 뽑혀있는 시신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 등 잔달라의 나즈미르와 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지역.
호드도 대장정을 통해 방문 가능
스톰송 계곡은 쿨 티라스 북부의 땅이며 쿨 티라스의 강력한 해군력의 밑바탕이 되는 조선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또, 함선을 축복하는 '파도현자'를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얼라이언스의 용사는 스톰송 가문의 사병의 저지로 진입에 난항을 겪는다. 이번에도 탤리아가 용사와 함께하며 스톰송 가문과 파도현자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한편 후반부에 갑자기 호드 군대를 막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뒤에서도 언급할 내용이지만 급하게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라 앞선 내용과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감상이 든다.
여담으로 스톰송 계곡의 우측 끝에 위치한 폭풍의 사원이 있는 땅에서는 파도현자와 관련된 퀘스트를 매일 진행할 수 있는데, 이 지역의 석상이 눈이 여럿 달린 문어로 크툴루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고대신들의 존재가 가까이 느껴지는 장소로 드러스트바와는 다른 방향의 공포를 조성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얼라이언스 용사는 메인 스토리와 별개로 제이나 프라우드무어가 쿨 티라스에서 어머니와 화해하고 쿨 티란 인간들에게 다시 받아들여지는 귀향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 스토리 라인이 꽤 잘 만들어져 호드에 비해 스토리 부분에서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스톰송 계곡의 유독 많은 서브 스토리나 뜬금없는 후반부 호드 군대 이야기 등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모델링 변경으로 더 아름다워진 제이나
■ 로아=동물원? 스케일 차이의 폐혜
잔달라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트롤이 섬기는 '로아'에 대해 막연히 강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야생신들을 일컫는 이름이라 생각했던 로아가 드디어 잔달라에서 대거 등장하는데, 직전까지 어마어마한 난적들과 싸워온 탓인지 뭔가 희소한 동물을 보는 느낌이 적잖이 있다. 왕들의 로아 레잔이나 랩터 로아 공크, 테러닥스 로아 파쿠 등 다양한 로아들은 어딘지 모르게 기존에 보여주던 야생신들에 비해 약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슬쩍슬쩍 언급되는 모 로아는 혈트롤 마마 한 명에게 간단하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어떤 로아는 용사의 손으로 직접 찔러죽이기도 한다. '모 로아'는 간단하게 함정에 걸려 어이없게 죽는 것도 모자라 이용당하기까지 한다.
다시 돌이켜보자. 우리는 아제로스를 지키면서, 때로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면서 참 많은 적들을 물리쳐왔다. 불타는 성전 당시 이미 블러드엘프 왕자 켈타스 선스트라이더, 일리단 스톰레이지, 반신만 소환되기는 했지만 킬제덴 등을 무찔렀고, 당장 지난 확장팩에서는 온 세상을 불태우고 다니는 불타는 군단과 그 수장, 타락한 티탄이자 압도적으로 강한 살게라스를 봉인하는 데에 성공했다.
고리발
이런 와중에 갑자기 조금 더 강하고 말하는 야생동물들을 만나도 그 경이는 상대적으로 적기 마련이다. 정말 경이롭다고 느낀 모 로아는 등장할 때부터 이미 죽어있는데다 아예 시체를 파먹히기까지한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니 그간 궁금했던 로아의 존재가 밝혀졌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브원삼디 같은 익숙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악동 이미지의 로아는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아마 잔달라에 와봤다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죽었을 때 자신의 직업에 따라 비아냥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브원삼디의 조롱을.
다루는 이야기에 따라 스케일은 어쩔 수 없고, 이번에는 마찬가지로 그간 떡밥으로만 무성하고, 이전 확장팩에서도 본체는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을 뿐인 아즈샤라 여왕과의 전면 대결과 언급되던 주요 고대신 중 마지막으로 남은 느조스가 영상을 통해 등장하면서 앞으로 방대해질 스케일을 예고하기는 했지만.
여담이지만 용사의 위상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전 확장팩에서도 전통이라 할 정도로 이런 일은 있었지만 분명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 진영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군단에서는 살게라스를 봉인하기도 했고 일리단 스톰레이지가 직접 메시지를 전하는 수정을 건네기도 했으며 격전의 아제로스에서도 각 진영을 대표하는 자리를 받았지만 전역 퀘스트에서는 똥을 뒤적거리게 된다. 오죽하면 똥을 모으는 퀘스트가 팝업되는 볼둔 공개 채팅 채널에서 '내 똥 좀 훔쳐가지 마라'라는 웃지 못할 소리가 나올 정도.
멋지긴 한데 조금 사냥꾼 희귀펫 같아요…….
■ 개선된 시스템, 전쟁 온/오프
다양한 시스템의 개선이나 스킬, 스탯 압축 등이 있었지만 제일 논하고 싶고 눈에 띄는 시스템은 전쟁 참여, 비참여 모드가 임의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변경되고 기존의 '전쟁 서버', '일반 서버' 구분이 사라졌다는 것. 각 진영의 용사들은 각각 호드는 오그리마, 얼라이언스는 스톰윈드에서 전쟁 참여나 비참여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전쟁 참여를 선택했을 경우는 10%의 보상을 더 받는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존에 원하지도 않는데 상대 진영의 고레벨 플레이어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는 일은 방지할 수 있게된 것. 실제로 주력 캐릭터를 전쟁 비참여 상태로 120레벨까지 육성했는데 옆에서 적 진영 플레이어가 지나가도 별로 무섭지 않게 되는 심리적 안정감이 좋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국내 서버의 경우 한 진영이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 상황에서 전쟁 참여와 비참여로 위상이 달라지지만 모든 서버가 위상을 공유하면서 참여할 경우 기존 얼라이언스 강세였던 서버의 용사들도 최강의 인구를 자랑하며 호드 극 강세 서버인 아즈샤라 서버와 위상이 맞춰질 수도 있는 상황이 왔다는 점. 이로 인해 전쟁 참여 상태에서는 집중 공격을 받아 퀘스트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또, 이번 확장팩에서는 공격대 던전의 아이템 획득이 '개인 획득'으로 변경됐다. 기존처럼 아이템이 나와 공격대원들이 골드로 경매해 구매하는 소위 '골팟'이 가능했던 시스템과 달리 참여한 모든 플레이어가 무작위의 보상을 획득하는 시스템이 된 것. 기존의 시스템에서 여러 캐릭터를 이용해 배수의 아이템 파밍을 하는 등 부스팅이 가능했던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으로도 보인다.
굉장한 반발을 낳고 있는 패치도 있다. 소위 글쿨 패치라고 불리는 이 글로벌 쿨타임 패치로 인해 답답한 플레이를 강요받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 기존에는 쿨타임이 긴 스킬들을 몰아서 한 번에 큰 효율의 딜링 등을 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글로벌 쿨타임 패치로 인해 몰아쓰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 먼저 사용한 스킬의 효과는 이미 시간을 대부분 소모한 상태로 손해를 보게 된다.
글쿨 패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며 등한시 되는 컨텐츠로 군도 탐험이 있다. 이번 확장팩의 주된 자원이기도 한 아제라이트를 매주 달라지는 세 개의 군도에서 적 진영보다 더 먼저 목표치까지 획득하는 것이 목표인 일종의 시나리오 던전 개량판 모드라고 생각해도 좋다.
■ 멀고도 먼 동맹종족
격전의 아제로스에서 장점을 찾는 것도 분명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신규 이용자들이나 복귀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확장팩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이번 확장팩에 앞서 공개된 '동맹 종족'의 추가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후 추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잔달라 트롤과 쿨 티란은 아직 추가되지도 않았지만 격전의 아제로스 직전부터 동맹 조건을 달성하면 영입할 수 있었던 두 종족들도 이전 확장팩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해당 종족과 관련된 다수의 업적을 완료해야 달성되는 통합 업적을 하나씩 달성해야 하고 해당 종족과 관련된 하나의 평판을 최종 단계인 '확고한 동맹' 단계까지 올려야만 생성 조건을 맞추고 비로소 동맹 종족을 생성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생성하게 된 동맹 종족은 과거 영웅 직업으로 출시된 죽음의 기사가 55레벨로 시작하고, 군단에서 출시된 악마사냥꾼이 98부터 시작했던 것과 달리 어렵사리 조건을 달성한 동맹 종족은 20레벨부터 시작해 다시 그 긴 레벨업 과정을 거쳐야 격전의 아제로스 컨텐츠에 도달할 수 있다. 애초에 조건도 조건인데, 심하게 보면 거기서 레벨을 올리기가 고되다면 부스팅을 하라는 의도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스운 건 부스팅으로 레벨업 과정을 생략하거나 레벨 주기로 1레벨이라도 올리는 순간 레벨업 특전인 '유산 방어구'를 획득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격전의 아제로스에서도 여실히 느끼고 있겠지만 이미 지난 확장팩의 평판을 올리기는 아무리 당시보다 조건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당장 마그하르 오크의 생성 조건인 명에결속단의 평판에도 허덕이고 있으니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다 레벨업까지 다시 하라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여간 애정이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나가떨어지기 딱 쉬운 환경이다.
다 넘어가고, 새로운 동맹 세력의 캐릭터 생성이라는 메리트를 내세웠지만 그 메리트를 얻기 위해서 현 확장팩이 아닌 이전 확장팩의 지역에서 무언가를 오랜 시간 해야한다는 부분이 의아하다. 격전의 아제로스 출시 전에도 해당 조건은 달성이 가능했으나 출시되면 조건이 다소 완화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간단히 부서졌다.
나이트본도 군단 평판 확고한 동맹이 필요
■ 캐릭터의 붕괴, 개연성의 아쉬움
그렇다고 기존 이용자들에게도 아쉬운 점은 없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프랜차이즈일수록 과거에 쌓은 설정과의 괴리가 쌓이기 마련이지만, 특정 인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왜곡된다면 올드 팬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곤 한다.
특히 호드 진영 용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던 명예로운 오크 대군주 사울팽이 가시의 전쟁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보가 굉장히 아쉽고 불만스럽다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PTSD 현상을 겪으며 고기도 먹지 못하고 채식을 하는 오크가 됐는데, 가시의 전쟁에서는 말퓨리온의 뒤를 공격하고 주위에 널부러진 아군 병사들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을 한탄하고 있었고, 그런 희생으로 인해 만든 상대 진영의 요인 처치 기회를 간단히 날려버렸다. 상대 진영 요인을 처치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아군 장병들의 죽음보다 자신의 위신을 신경 쓰는 것이 그가 말하던 '명예'인가? 이런 모습들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개연성이나 연출 부분에서의 미흡함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장정에서 파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정작 영상에서는 파도가 아닌 전격을 사용하는 황당한 모습도 나타난다. 전역퀘스트의 보상은 기존에 비해 줄어들었고, 의도적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어뜨리려는 부분들이 보이기도 했다.
■ 진영전으로 돌아가기 전 단계
옛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가 출시 후 첫 빌드에서 가로쉬 헬스크림과 스랄의 막고라로 일단 이야기를 끝맺었던 때, 아직 확장팩의 이야기가 모두 전개된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확장팩 스토리들은 한 번의 패치로 끝까지 공개되는 것이 아닌 몇 번의 대규모 패치를 통해 더해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번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의 이야기도 아직 모두 끝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개된 부분까지 스토리를 진행하고 느낀 감상은 '격전은 출시 전 가시의 전쟁이랑 출시 후 로데론 공성전이 다인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본래 출시 전부터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대립을 주제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두 진영의 '박 터지는' 싸움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는 다소 갸우뚱하게 되는 정도로 아직 본격적인 대립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한편 향후에는 격전지 등의 패치가 기다리고 있다. 호드의 스토리 무대인 잔달라 부족과 호드의 이야기는 오는 6일 공개되는 첫 번째 레이드 '울디르'에서 일단락 될 전망.
퀘스트를 비롯해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즐기는 플레이어는 진영에 따라 느끼는 감동이 적을지도 모른다. 워낙 이번에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의 가족과 그녀에게 얽힌 이야기를 잘 다뤄줬기에 얼라이언스 진영이 느끼는 감동은 더 클 것이고, 스토리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은 호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찝찝한 뒷맛을 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이야기의 전개도 새로운 동맹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내부결속을 다지는 초반부가 막 끝났을 뿐이다.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본격적인 격전의 이야기가 전개될 앞부분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해보도록 하자.
매력적인 성격의 브원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