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자본이 투입된, 제대로 된 상용화 게임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게임에 북한이 나오기만 해도 이슈가 되고, 특정 국가를 악국으로 설정해도 크고 작은 말들이 생기는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무난하면서 대중적인 주제로, 아니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 이야기를 녹여 내곤 한다.
하지만 인디 게임은 조금 다르다. 정치적인 부분이나 민감한 사건을 가감 없이 소재로 활용한다. 이는 상업 게임처럼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지금 소개할 ‘언폴디드 – 동백이야기’ 역시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바로 이틀 전, 4월 3일이 기념일이기도 한, 민감한 제주 4.3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과거의 아픈 기억,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은 단순히 3.1절이나 광복절처럼 4월 3일에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학살과 참사를 총칭하여 의미하는 단어다. 4월 3일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사건을 세세하게 설명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자료들이 필요하기에 관심 있는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기 바라고(자료가 많아 상당히 쉽게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여기에서는 간략하게만 언급할까 한다.
4.3 사건은 대한민국 독립 이후 미군정과 한국의 이념 갈등이 주가 되어 제주도에서 시행된 엄청난 학살 사건으로,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 대회부터 시작됐다. 3·1절 행사가 끝난 후 시민들이 가두 시위를 하던 중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군중들이 경찰서로 몰려가 항의했으나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이에 시민 6명이 희생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3월 10일부터 민관합동 총파업이 시작됐고, 미국과 정부에서는 제주도를 '붉은 섬', '빨갱이섬'으로 몰아갔다. 본토에서는 응원경찰이 대거 파견됐고 이 중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대거 제주에 들어와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하면서 '빨갱이 사냥'을 한다며 고문과 테러를 일삼았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반된 민심과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을 결합하여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군정이 개입,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다. 특히 사태 초기 미군정과 무장대와 협상이 이루어질 뻔했으나 우익청년단의 협잡으로 미군정은 무력에 의한 강경진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제주 시민의 10분의 1 이상이 희생됐을 정도로 광범위한 참사가 벌어졌는데, 대부분이 남로당이나 무장대와는 관계없는 선량한 주민들이었다. 4.3 사건은 이러한 학살 만행을 총칭하는 말이며,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된 국내의 대표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어드벤처 게임
‘언폴디드-동백이야기’는 이러한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의 상황과 제주 주민들의 힘들었던 상황을 게임으로 대변하고 있다.
게임의 시작은 가출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주인공이 아버지의 단서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일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아버지가 겪었던 4.3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전체적인 비주얼은 마치 만화의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편. 인디 게임 답게 조금 엉성한 비주얼이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모습이고 특색도 있어 게임 내내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특이한 부분은 게임 전반에 투 톤 컬러만 사용해 화면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인데, 게임이 과거의 상황을 체험하는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아마 의도적인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동백이야기의 구성은 전형적인 어드벤처 장르 형태로 진행된다. 주변을 수색해 단서나 아이템을 찾고, 이러한 아이템을 사용하여 퍼즐을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
다만 퍼즐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은 편인데, 단서가 눈에 확확 들어오는, 그런 게임은 아니다. 예를 들어 책상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한데, 이러한 열쇠를 주변에서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먼저 조사해야 특정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의 단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특정 아이템을 특정 사물에 드래그 해 맵에 놓아 두어야 연관되는 작업이 진행되는 등 생각보다 복잡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인디 게임의 경우, 게이머에게 불친절한 부분들이 많기 마련인데, 이 게임 역시 이러한 다양한 퍼즐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풀어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힌트 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행이 더디게 흘러 가는 편이다. 그만큼 퍼즐을 푸는데 시간이 걸린다.
전체적인 볼륨도 짧은 편은 아니어서 퍼즐을 풀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플레이 타임이 몇 시간 정도 나오는 수준. 물론 이 중 상당수는 난해한 퍼즐을 풀어나가는 데 사용되지만 내용 자체도 간단하고 짧지는 않다.
- 당시 제주 민간인들의 힘든 상황을 엿보다
게임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챕터는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닌 연속적인 스토리 라인을 4개로 끊어 놓은 듯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며, 유저들은 이 작품을 통해 토벌군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친 제주 시민들의 고달픈 여정과 토벌군의 잔혹함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당시 무고한 시민들이 4.3 사건 당시 어떠한 행보를 하게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조작 방식은 단순하다. 마우스로 이동이 가능하고,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은 클릭 후 드래그로 사용 가능하다. 대상을 우클릭하면 해당 대상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으며, 오브젝트는 별도의 이름이 팝업되기 때문에 이름이 표시되지 않는 것은 그냥 배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플레이를 즐기면서 특정 지점에 일지를 드래그 하면 시를 창작하는 등의 시스템도 준비되어 있고 지나간 대화 내용을 별도의 창에서 볼 수도 있다. 또한 갤러리 메뉴를 통해 인상 깊은 장면을 다시 볼 수 있기도 하다.
전반적인 게임의 모습이 저 예산의 아마추어 느낌이 풍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드벤처 게임에 있어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가장 중요한 진행 단서가 거의 없다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 4.3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플레이를 해 보자
이 작품은 사실 플레이를 통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4.3 사건의 당시 참혹했던 제주 민간인들의 상황을 왜곡 없이 보여주고, 이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의도를 가진 작품 치고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어서(스팀가 16500원), 4.3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접근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조금 더 가격을 낮추었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4.3 사건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4.3 사건은 이념 대립에 기반한 사건 중 하나이고, 그만큼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제작사 역시 디테일하게 내용을 풀어 내기 보다는 당시의 힘든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제작한 느낌이다.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제주도 시민이 아닌 이상, 현대의 일반인들에게 4.3 사건은 교과서 등에나 등장하는 과거의 역사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게임으로 만들어지게 되면 글자로만 보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다.
4.3 사건이 궁금한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폴디드 – 동백이야기’ 를 한번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이를 통해 가슴 속으로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